'즐거운 사라'가 우울증으로 자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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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즐거운 사라'가 우울증으로 자살하다
  • 입력 : 2017. 09.05(화) 17:04
  • 정성용 기자

즐거운 사라가 자살했다. 오늘날 같으면 별 외설스러운 행동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이야기들이 당시에 외설로 치부하면서 사라는 우울했다. 결국 우울증을 못이겨 자살했다.

그의 가족도 오늘 ‘자살’임을 밝혔다. 사라를 탄생시켰던 마광수 교수의 이야기이다.

20대 '천재교수'에서 '외설작가'로 낙인 찍혔던 비운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1951~2017)가 5일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알려졌다.

마 교수는 이날 오후 1시35분쯤 서울 용산구의 자택에서 목을 맸다. 마 교수는 그동안 우울증 약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끝내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즐거운 사라’가 ‘우울한 사라’가 됐다.

마 교수는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을 펴내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발표한 뒤로 ‘외설’ 여부를 놓고 세간의 관심이 증폭됐고 1990년대 내내 필화에 시달렸다.

마 교수는 지난해 연세대에서 정년퇴직했다. 19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출간한 후 교수의 품위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은 마 교수는 정년퇴직을 했지만 명예교수도 되지 못하고 연금도 받지 못한 것을 비관해 왔다.

평생을 강단에 섰고 글만 써온 그에게는 너무나 혹독한 시련이었다. 더 이상 그의 글을 받아주고 원고료를 제대로 챙겨줄 곳이 없었다. 연금도 없으니 무엇으로 세상을 버티고 살 수 있었을까.

마 전 교수는 그림과 시에 뛰어났다. 28세의 나이에 홍익대에서 조교수로 임용되면서 '천재 교수'라고 불리며 학계의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33세에 연세대에서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첫 시집 '광마집'(1980)에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괴감,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그의 문학이론서로서는 윤동주와 상징시학, 놀이로서의 예술을 조명했다.

그는 교수 초기에 시집이나 학문적인 성취를 보여줬던 그의 면모는 자의반 타의반 '에로티시즘의 기수'가 되었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즐거운 사라' 같은 작품들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성애문학'에 작가 스스로도 집중하는 외도의 길을 걸은 것이다.

사실 마 교수를 부추긴 데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무차별적으로 그를 에로티시즘 작가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광수의 다양성은 제대로 피어나지 못했다.

그의 작품 '즐거운 사라'(1992)는 윤리와 반윤리를 넘나드는 여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를 파헤친 장편소설이다. 그에게 붙여진 '외설적인 문학'이라는 주홍글씨로 인해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구속되기에까지 이르렀다.

오늘날에는 이보다 더한 것들도 있지만 단지 그가 교수라는 이유만으로 ‘마녀재판’을 받은 것은 아니지 곰씹어볼 일이다.

마 교수는 1992년 10월 29일 '즐거운 사라'라는 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강의 도중 검찰에 긴급 체포된 뒤 구속됐다. 그렇게까지 긴급체포가 될 일이었을까.

당시 구속 이유는 '즐거운 사라' 여주인공이 대학생 신분으로 자신의 대학교수와 성관계를 하는 등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했다는 이유다.

마 교수는 구속됐고, 소설은 판매가 금지됐다. 1995년 6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1998년 3월 사면되기까지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어느 네티즌은 이 책의 판금 조치는 성애 묘사의 에로틱이라는 관점보다는 여대생인 사라라는 여자의 방종이 ‘동방예의지국’임을 자처하는 전통적 윤리규범에 벗어날 뿐만 아니라, 그처럼 방종하는 여대생이 우리의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것이 나름대로의 판단이었던 것이 아니냐고 해석했다.

즉 외설 자체의 리얼한 묘사보다는 성에 대한 개방적 사고가 너무 현실과는 괴리가 컸기 때문에 법적 제재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1985년 12월 연극학 교수와 결혼한 마 교수는 1990년 1월 합의이혼했다. 자녀는 없다. 노모 김순희씨는 2015년 별세했고, 유족으로는 누나가 있다.

정성용 기자 newstokt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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