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구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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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칼럼
낙엽 구르는 소리
  • 입력 : 2017. 11.24(금) 09:33
  • 문틈 시인

포도 위에 낙엽들이 바람에 날린다. 포도에 낙엽들이 굴러간다. 포도 위에 낙엽들이 끼리끼리 몰려다닌다. 낙엽들이 내는 갈빛 내음, 낙엽들이 떼지어 굴러가는 소리, 계절은 이제 지난 계절의 결실을 그 길 끝에 놓고 마침내 낙엽이 되어 저물어간다.

모든 것을 놓고 휘적휘적 가는 빈 모습을 보노라니 정든 누군가와 작별하는 마음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그 빈 모습은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고 가는 허허로운 모습이다.

가을이 가는 발자국소리. 그 소리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다. 낙엽이 세상 끝으로 굴러가는 소리다. 이제 봄날에 품었던 소망들이 다 이루어졌으니 한해도 저문 거나 마찬가지다. 다가올 겨울이 있다고는 하지만 겨울은 봄을 잉태하는 침묵과 시련의 회임 기간이다.

가을길에 굴러가는 낙엽들의 행로를 보면서 나는 갑자기 무엇인가 대단원의 끝을 보는 심상에 사로잡힌다. 낙엽을 떨군 채 빈 가지를 쳐들고 서 있는 나무들, 가슬을 마친 학다리 들판, 차일을 거둔 하늘, 길가의 시든 풀섶, 높다란 푸른 하늘에 떠가는 송이구름.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시야의 모든 곳에서 그 흔적들을 본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태어나 성숙을 거쳐 결실을 남기고 사라져간다는 자연의 대법칙이 새삼 극적으로 다가온다. 낙엽이 되어 사라져가는 것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서술할 말을 잃는다.

낙엽은 결국 그것들이 온 곳,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무수한 잎 하나하나가 제 인연을 다하고 가는 모습에서 자연법의 운행과 질서를 넘어선 섭리의 손길을 느낀다. 나 또한 한 잎 낙엽의 행로를 따라갈 존재다. 길에 떨어진 붉은 낙엽을 주웠다가는 차마 어쩌지 못하고 도로 그 자리에 내려놓고 만다.

낙엽 한 잎이 나뭇가지에 피었다가 사라지기까지에는 우리가 알지 못할 전우주적인 기운이 작용했다. 흙과 물과 햇볕과 바람과 밤과 낮과 대기와…. 어찌 한 잎 낙엽뿐이겠는가. 나 또한 엄청난 인연들이 얽히고설켜서 이 땅에 온 것임을 깨닫는다. 만일 몇몇 대 조상님들의 핏줄을 대대로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중에 어느 한 핏줄이 다른 핏줄과 어긋나게 만났다면, 그리하여 나를 태어나게 한 그 모든 핏줄들이 조금치라도 행로가 달라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이 한 목숨이 이 땅에 태어난 데에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인연과 환경과 조건들이 한 치도 삐끗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하면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바람에 불려가는 낙엽들을 보면서 이 세상 모든 생명들이 또한 그러한 기적 같은 전우주적인 협력의 결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낙엽이 네게 남겨준 헌사 같은 것이다. 살아 있음이란 참으로 엄숙하고 장엄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낙엽은 인연 따라 났다가 인연 따라 저물어간 것이다.

두보는 ‘등고’라는 시에서 “끝없이 지는 나뭇잎은 쓸쓸히 떨어지고/다함이 없는 장강은 잇달아 흘러오는구나.”라고 가을의 깊은 슬픔을 노래한다. 가을길에서 쓸쓸함을 참고 돌아와 거실 창으로 내다보자. 눈이 시린 하늘가에서 참나무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나는 이렇게 길에서 집안에서 저물어가는 계절을 바라본다. 그것은 마치 오랜 상처와도 같이 내 마음을 한없이 침울하게 한다. 가을을 노래하는 시인들이 가을이 가는 것을 무상하고 슬퍼함을 무릇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의 뒷모습에 마음이 침울할 때 나는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옛날 국어교과서에 실린 ‘페이터의 산문’을 읽는다. 그리고는 잠시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恰似)한 것, 가을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세상은 한 큰 도시. 너는 이 도시의 한 시민으로 이때까지 살아 왔다. 아, 온 날을 세지 말며, 그 날의 짧음을 한탄(恨歎)하지 말라. 너를 여기서 내보내는 것은, 부정(不正)한 판관이나 폭군이 아니요, 너를 여기 데려온 자연이다. 그러니 가라. 배우가, 그를 고용한 감독이 명령하는 대로 무대에서 나가듯이. 아직 5막을 다 끝내지 못하였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3막으로 극(劇) 전체가 끝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작자(作者)의 상관할 일이요,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낙엽이 지는 것을 보면서 절대한 것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모든 물상의 운명을 사색하고 또 생각해보는 늦가을 하루다. 아, 살아 있는 날의 쓸쓸함이여.

문틈 시인 newstokt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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