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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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칼럼
겨울 숲을 바라보다
  • 입력 : 2017. 12.12(화) 12:14
  • 문틈 시인

집 앞에는 작은 숲이 있다. 언덕진 숲은 가을까지 잎새로 우거져 있었다. 주로 키 큰 참나무들이 많고 어쩌다 잣나무, 물푸레나무들이 섞여 있다. 아파트 단지 옆의 쌈지 공원보다는 큰 자연녹지대인데 거실 창유리로 보이는 근경이 살풍경한 도시를 벗어나 눈을 편하게 한다. 숲 너머로는 푸른 하늘이 공활하여 아내는 전망 하나는 그만이라며 찬탄한다.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맞는 겨울 숲 풍경은 내게 깊은 사색에 들게 한다. 잎새를 다 떨군 나무숲의 가는 우듬지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안 난다. 바람이 헐벗은 나무들을 희롱하자 실가지 우듬지들이 바람이 흔드는 대로 흔들린다. 봄, 여름, 가을과는 다른 이야기가 막 시작되려는가싶다.

바로 얼마 전까지 낙엽들이 우수수 지더니 요 며칠 사이에 숲은 온통 나무들이 죄다 나목이 되어 숲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그러자 여태 숲으로 들어가서 안 보이던 소롯길이 언덕을 타고 올라간 모습이 나무들 사이로 보인다. 잎이 지자 숲이 감추어둔 길이 드러난 것이다. 아, 하고 나는 감탄사를 발했다. 숲은 이제 더 이상 숨길 게 없다. 엊그제 눈이 잠깐 내려 나무숲을 은박을 했을 때도 숲길은 눈에 덮인 채로 드러나 있었다.

나는 오늘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날은 거실 소파에 앉아서 작은 숲을 바라본다. 마치 유튜브 영상을 보듯 망연히 겨울 숲을 바라보고 있다. 나무들은 우듬지의 잔가지들을 하늘로 뻗은 채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림처럼 가만있다가도 바람이 조금만 불면 금방 흔들거린다. 몇 시간이고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보면서 나는 앉아있다.

마치 낚시꾼이 호수에 던져놓은 찌를 보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듯이 나도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시간 가는 줄도 잊고 있다. 숲의 배경을 이루는 하늘에는 이따금 어느 구름 공장에서 나온 것인지 흰 구름 조각들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까치들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숲의 전경을 가로질러 날아가기도 한다.

숲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고요로 그득해진다. 아내는 더 이상 어디로 이사 가지 말고 여기서 평생 살자고 한다. 사실 나는 무척 오랫동안 시골의 단독주택을 꿈꾸며 한때는 열심히 땅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그것은 그냥 꿈이지 나처럼 병원에 자주 가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반생을 도시에서 지낸 사람이 시골에 가서 내가 누구와 교통할 것이며 딱히 할 일 거리도 찾기 어려웠다. 결국 포기하고 아파트에 살되 최대한 시골 분위기가 나는 곳을 찾아서 몇 번이나 이사를 한 끝에 가까스로 이곳 작은 숲 언저리에 오게 되었다.

숲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이야기 속으로 나는 자주 들어가곤 했다. 엊그제 눈 온 날 신새벽에도 숲길로 들어갔다. 겨울눈에 덮인 숲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숲과 나누는 교감, 그것은 내게는 예배 같은 것이고, 대화하는 것이고, 내가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 고백 같은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숲도 나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체 누가 나 말고 이 아파트 단지에서 신새벽에 일어나 작은 숲에 들어와 말을 거는 사람이 있을까보냐. 숲도 그런 교감을 나와 나누고 있을 것이라고 우정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가을 나는 숲에 들어갔다가 땅에 떨어진 도토리 몇 알을 주워서 숲 바닥에 숨겨 놓았다. 요것들이 내년 봄에는 싹이 틀 것이다. 자라서 나무가 될 것이다. 나무들은 몇 십 년 자라서 하늘에 실가지를 뻗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나무들이 누가 심은 나무인 줄을 모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품게 될 것이 그렇게도 나는 좋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 도토리들은 지금 언 땅 속에 묻혀 작은 씨알 속에 그런 나의 바람을 실현하려고 원대한 계획을 짜고 있을지 모른다.

모든 나무들은 애초에 심었던 그 누군가의 생각을 현현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자연이든, 신이든, 무엇이든. 그리고 숲으로 난 소롯길은 그런 숲의 비밀을 알아보려는 인간들이 지나간 발자국들의 모임이 아닐까.

작은 숲은 어느 새 석양에 비껴 어둔 색이 짙어지더니 해가 지고 나자 갑자기 어둠으로 칠한 듯 껌껌하다. 어두워지는 숲을 보면서 나는 마치 무념무상의 한 끝자락을 쥔 듯 내가 저 어둔 숲 속의 한 그루 나무가 되는 착각에 빠진다.

거의 날마다 나는 혼자서 숲 속으로 들어간다. 마음이 심란하여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숲으로 가면 숲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은 그 느낌이 좋아서다. 겨울 안개가 자욱한 날에도 갔는데 그날은 숲이 산더덕 냄새 같은 향기로운 기운을 뿜어냈다. 숲이 그런 모양으로 내게 알은 척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숲에 해줄 수 있는 것은 숲을 찬양하는 것이다.

내일도 나는 숲에 들어가고, 숲을 바라보고, 숲으로 난 길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말로는 다 하지 못한 숲의 비밀을 오래도록 숨긴 채 여기에 머물고 싶다.

문틈 시인 newstokt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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